
다음 글은 vivienneoh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청춘을 응원합니다'프로그램에 합류한 후 블로그 'vivienneohseoul'에 기고했던 내용을 가져 온 것입니다.
안동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풍악서당으로 운영되던 것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이를 다시 1605년 중건, 1607년 서애 선생 서거 후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사당 건립 논의가 시작되어 1614년 존덕사(사당)를 완성하고 서애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교육기능과 제항기능을 갖춘 정식 '병산서원'으로 격상되었다.
왜 병산서원, 병산서원 하는가?
누하진입을 하는 서원은 이곳 말고도 옥산서원이나 도동서원, 남계서원 등의 예가 있으니 특별한 경우는 아니었던 것 같고, 문루나 누각의 형태도 남계서원 등을 보면 유일무이한 존재도 아닐 것이다. 풍경으로 쳐도 옥산서원 무변루에서 바라보는 세심대 계곡의 풍경과 물소리도 만만치 않고 도동서원의 수월루에서 바라보는 굽이치는 낙동강 물줄기와 건너편의 산자락을 바라보는 경치도 병산 풍경에 뒤지지 않았을 터이다.
입교당 대청마루에 앉아 구름 내려앉은 병산을 가로지르는 만대루의 선들을 본다. 용마루부터 강당 앞마당 끝선까지 지붕, 처마, 누 공간, 누 마루, 필로티 등 면과 빈 공간, 선이 반복된다. 앞을 가로막은 압도적인 녹색의 절벽을 리드미컬하게 여러 번 가로로 분할하여 위압적인 기세를 해체했다고나 할까? 고려말 강일용이란 시인이 백로를 관찰하기 100여 일 만에 얻었다는 하이쿠보다 짧은 미완성의 완전한 시구 '白鷺飛割碧山腰(백로 날아올라 푸른 산허리를 가르네)'가 저절로 그려진다. 아마도 서원의 모습을 갖추고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만대루가 들어섰으니 만대루 건립 이전에는 백로가 푸른 산허리를 갈랐겠지.
입교당 대청에 앉아 망연히 만대루와 그 너머 낙동강변과 강변 앞에 병풍처럼 버티고선 병산을 바라본다. 비는 내리고, 마음은 침잠하고, 시간은 내리는 빗물에 용해되어 흐른다. 400여 년의 시간이 지금과 맞닿아 있는데, 세월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담장이 아니라 누각을 생각해 내고, 더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딱, 시선 아래 걸릴 만한 높이에 용마루를 걸쳐두고, 7첩 병풍을 뚫어 놓고, 필로티로 육중함을 거둬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다른 어떤 서원을 비교해도 당해낼 도리가 없다.
한국 전통건축을 바라보는 인식론은 서양과 달리 밖에서 대상(물질)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하나 되어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시선이라는 것, 그래서 바람, 구름, 비(내리는 풍경,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 듣는 소리), 새소리, 꽃 향기, 풀 향기, 담장 너머의 풍경 등 온몸의 감각과 마음이 동원되는 경험이며, 대상과 주체가 하나로 통합되어 초의식적으로 대상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담론은 암묵적으로 동의가 된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입교당 마루에 앉아 내려다보는 만대루가 갖는 비례와 위요와 개방감과 그 너머 자연을 하나로 엮은 장인의 고심과 해결책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고 한국 전통건축이 대상 자체를 감상하는 자세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만대루 우물마루 바닥이 정통 우물마루 방식에서 조금 빗겨 나 동귀틀을 생략하여 좀 더 널찍하고 시원한 시야를 갖게 한다든지, 정면을 향하는 담장은 측면과 뒷 돌담장과 다르게 와편담장으로 하여 멋을 냈다든지, 혹은 강학공간의 동. 서재와 입교당 전면에 툇간을 두고 툇간 전면 기둥은 원기둥으로 한 것이라든지 곳곳에 세심한 디테일이 고려되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한국전통 건축을 논할 때 그저 인간과 자연과의 합일이라거나 형태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로 재단할 일은 아닌 것이다. 어느 건축도 하나의 전형화된 해석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것이다.
vivienneoh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청춘을 응원합니다' 프로그램에 살짝 묻어서 다녀온 터다. 청춘들은 그림으로, 사진으로 그들이 본 것을 표현할 것이다. 나도 저 나이 때 서너 번 다녀왔었고, 그 이후에도 또 다녀왔었지만 서너 시간 머물면서 돌아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시간을 가지고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마 세상사 거의 모든 것들이 그러할 것이다. 오늘 참여한 청춘들이 장시간 머물면서 눈에 담는 장면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작품을 한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청춘들의 눈이 매섭다. 'Evviva la gioventu!'
vivienneoh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총5회에 걸쳐 고궁으로, 도심 속으로 들어가 보고 느낀 것들을 표현해 내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춘 중 20인의 작품은 2026년 10월, Korean Week in Millano 행사기간 동안 Fondazione Sozzani에 전시될 것이다.
끝으로 [재(齋): 건축드로잉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하신 Creative Director VivienneOh의 청춘을 향한 열정과 뚝심, 그리고 진정성에 박수를 보냅니다.
(글, 사진 : 김준철)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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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의 정체성_서양 건축과의 차이를 통해 보다 / 이상헌 / 미메시스 / 2023(4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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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 정밀실측조사 보고서(상, 하) / 안동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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